詩다움

여자비 [안현미]

초록여신 2009. 7. 19. 09:57

 

 

 

 

 

 

 

 

 

 

 

 

아마존 사람들은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여자비라고 한다

여자들만이 그렇게 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지마 울지마 하면서

우는 아이보다 더 길게 울던 소리

오래 전 동냥젖을 빌어먹던 여자에게서 나던 소리

 

 

울지마 울지마 하면서

젖 먹는 아이보다 더 길게 우는 소리

오래 전 동냥젖을 빌어먹던 여자의 목 메이는 소리

 

 

 

 

 

* 황해문화, 2006년 가을호.

 

.......

 모든 갓난아이는 젖 앞에 평등해야 하므로 마을에 한 분씩 젖어미를 보냈다 한다. 그 어떤 이념도, 전쟁도, 천재지변도 갓난아이를 굶주리게 해서는 안 된다. 젖어미의 젖이 마르지 않도록 젖아비인 국가와 사회가 그 짐을 떠맡아야 한다.

 여자를 하루 내내 울게 해서는 안 된다. 비처럼 우는 여자가 있다는 것은, 그 영토에 홍수가 닥쳤다는 것이다. 어린 물고기의 가녀린 지느러미에 흙탕물을 퍼붓지 말자. 거센 홍수를 거슬러 오르면 거기 옹달샘이 있다고, 거짓 희망으로 주린 배를 달래지 말자.

 여기 슬픔이 범람하는 시가 있다. 어미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울지 마, 울지 마" 달래는 것뿐이다. "울지마, 울지 마" 어르다가 꺼이꺼이 삼킨 울음통, 텅 빈 자궁이 온몸을 흔드는 비가(悲歌)가 있다. 떨리는 어미 손이 아이 등을 둥글게 감싸 안을 때, 세상의 구름은 또 얼마나 깊은 설움을 서려 물까?

 아이가 동냥젖을 얻어먹는 게 무언가? 태어나자마자 동냥아치가 된 아이를 업고 다니는 동냥어미의 마음은 무언가? 어미마저 동냥젖으로 컸으니, 여인의 울음은 참 오래된 것이구나. 구름이 구름을 낳듯, 비가 비를 낳듯, 울음이 울음을 낳았구나. 목멤이 목멤을 낳았구나. 아마존 여인의 울음소리가 장맛비가 되었구나.

 비 걷힌 하늘의 햇살이 최고 아닌가? 눈물방울 아롱진 웃음이 가장 아름답지 않던가? 이제 여자비를 거두게 하자. 동냥젖에서 화약냄새를 걷어 내자. 여자의 울음에서 탱크 소리를 뽑아 내어 아마존 악어에게 던져 주자. 세상 아비된 자들아. 이제 굶주린 아이를 남자들이 건네 받자. 마약과 알코올과 니코틴과 총성을 거두어서 마음을 끓이자. 밥을 짖자.

 갓난아이에게서 빼앗은 젖을 돌려주자. 여자의 젖은 애초부터 남자의 것이 아니다. 평화는 여자의 젖을 어미의 젖으로 돌려주는 일부터다. 아이에게 어미의 젖을 온전히 되돌려 주는 것부터 평화가 시작되나니!

ㅡ엄마는 생각쟁이 /  2009년 7월호, <이정록의 시 읽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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