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애너벨 리 [애드거 엘런 포]

초록여신 2009. 7. 14. 11:45

 

 

 

 

 

 

 

 

 

오래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해변에 자리한 한 왕국에

애너벨 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나를 사랑하고 나의 사랑을 받는 것밖엔

 다른 어떤 생각도 없이 살았습니다.

 

 

해변의 이 왕국에서

 그녀는 어린아이였고 나도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넘어선 그 어떤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하늘나라의 날개 달린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탐낼 정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해변에 자리한 이 왕국에서

 일이 있었던 것도 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구름이 바람을 뿜어내어

 나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몸을 얼리더니

그녀의 고귀한 가문의 친족이 와서

 그녀를 나에게서 떼어가

해변에 자리한 이 왕국 안의

 어느 무덤 속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마음이 하나도 기쁘지 않은 천사들이

 그녀와 나에게 샘을 낸 것입니다ㅡ

네!ㅡ그거였습니다 (해변에 자리한 이 왕국에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밤에 구름에서 바람이 몰아쳐 나와

 나의 애너벨 리를 얼어 죽게 만든 까닭이 그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ㅡ

 우리보다 훨씬 더 어린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

 훨씬 더 강렬한 사랑이었습니다ㅡ

하늘나라에 있는 천사들도

 바다 밑에 있는 귀신들도

나의 영혼과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을

 갈라놓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달빛이 비치기만 하면 나는 반드시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꿈에 보며

별들이 나오기만 하면 나는 반드시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저기 해변의 묘소 안에 있는,

 파도 소리 울리는 해변의 묘소 안에 있는,

나의 귀여운 사람ㅡ나의 귀여운 사람ㅡ나의 생명이자 신부인 그녀 곁에

 나는 밤새도록 누워 있는 것입니다.

 

 

 

 

* 젊은 세대를 위한 영시시선집-호주머니에 시를 넣고 다니셔요 / 김용철 편저. 김은정 삽화. 서프라이즈, 2009.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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