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시인 70인

블랙 먼데이 4 [장경린]

초록여신 2009. 5. 1. 09:34

 

 

 

 

 

 

 

 

 

 

502호가 외출하나 보다

문이 닫히는 자동 잠금장치 소리에 이어서

방울 소리가 들린다

502호가 개와 함께 산책을 가나 보다

 

 

집만 나서면 아파트가 떠나갈 듯

사납게 짖어대던 개가 어느 날 갑자기 조용해진 뒤로

내 머릿속은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졌다

정적이 짖어대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눈에 선해

문밖의 그 헛것에 더욱더 긴장하게 되었다

이글거리는 눈망울

움켜쥔 주먹처럼 떡이 된 털뭉치들

허공을 물어뜯으며 울부짖지만

성대가 제거되어 쉰 소리 하나 토해내지 못하고

축 늘어지는 혓바닥

 

 

야심한 밤

502호 연금생활자가 종일 시간만 죽이다가

개를 끌고 나가는 산책길

성대가 제거된 개가

현실이 제거된 502호를 끌고 나가는 산책길

 

 

환상통을 서로 교감하게 된 것일까

밤거리를 배회하고 돌아오는 방울 소리가

오늘따라 낭랑하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연재(월,수,금 연재) / 한국대표시인 70인 -시, 사랑에 빠지다

 

 

   2009.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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