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에게 기대올 때 [고영민]

초록여신 2009. 4. 18. 20:33

 

 

 

 

 

 

 

 

 

 

하루의 끝을 향해 가는

이 늦은 시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옆에 앉은 한 고단한 사람

졸면서 나에게 기댈 듯 다가오다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 몸을 추스르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올 때

되돌아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흔들림

수십 번 제 목이 꺾여야 하는

온몸이 와르로 무너져야 하는

 

 

잠든 네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올 때

기대어 잠시 깊은 잠을 잘 때

끝을 향하는 오늘 이 하루의 시간,

내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 나무가 한 나무에 기대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

나 아닌 것을 거쳐

나인 것으로 가는, 이 덜컹거림

 

 

무너질 내가

너를 가만히 버텨줄 때,

순간, 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올 때

 

 

 

 

* 악어, 실천문학사(2005)

 

 

 

.......

한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평화를 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긴 긴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나에게 기대어 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내가 그대들에게 기대지 못할 때,

어깨와 머리의 무게는 돌덩이가 되더군요.

내가 나를 기대게 할 때,

잠에게 기대야 할 때...

가위날에 찔린 무거운 발등을 옮길 때...

(오늘의 잠이 마침표였으면,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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