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깊은 왕래를 말로 해왔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아직 목마르고
오늘도 우리의 말은 지붕을 지나 바다를 지나
바람 속을 오가며 진행 중이다
종일 말 주고 준 만큼 더 말을 받는다
말과 말이 섞여 비가 되고 바람이 되고
때때로 계절 없이 눈 내리기도 한다
말로 살림을 차린 우리
말로 고층 집을 지은 우리
말로 예닐곱 아이를 낳은 우리
그럼에도 우리 사이 왠지 너무 가볍고 헐렁하다
가슴에선 가끔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말할수록 간절한 것들
뭉쳐 돌이 되어 서로 부딪친다
돌밭 같다
살은 달아나고 뼈는 우두둑 일어서는
우리들의 고단한 대화
허방을 꽉 메우는 진정한 말의
비밀 번호를 우리는 서로 모른다
진정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은폐의 늪 그 위에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
그 한마디의 독을 마시고
나란히 누울 수 있을까
* 오래 말하는 사이, 민음사(2004)
.......
어찌보면 그런 사이가 더 관계를 어렵게 할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 오래 말하는 어려운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우린 늘 진정이라는 포장지로
허방을 에워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멋지게 은폐해 버렸으리라.
단 한마디의 용기가, 위로가, 충고가,
독이 되어 전신을 마비시키기도 했었다.
오래 말 주고받았지만
늘 그때 뿐이였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말하는 사이이기를 꿈꾼다.
꿈으로 끝나더라도.
오래, 라는 단어가 구속이 되어 나를 또 감염시킨다.
이제 지친다.
짧게 말하고 짧게 끝내고 싶다.
(오래의 늪을 거부하며,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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