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빈 의자에 눈물을 [박연준]

초록여신 2009. 2. 4. 06:23

 

 

 

 

 

 

 

 

 

웃음소리 한 다발쯤 흘려놓고 갈까

외로이 남아, 나 대신 너를 지켜보라고

너는 빈 의자에 눈물을 앉혀놓을까?

뻥 뚫린 입속에 내성적인 네 혀가 더욱 침잠하겠지

나는 안경을 스무 개쯤 벗어낸 후 걸어가리라

안녕, 비닐봉지에다 한 모금 인사를 남겨놓을게

나중에 네가 부스럭대며 꺼내볼 수 있도록

창문 밖으로 부드럽게 흘러

간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나는 빨갛고, 추웠고, 가난했으므로

엉덩이를 자꾸 까 보여줬지만

너는 웃었지 가장 슬픈 표정으로

마치 처음 엉덩이를 보았다는 듯

과거에 불꽃처럼 무모했던 동공이여

이제 그만 스러지렴 여름은 시들었다

30cm 지팡이를 콕콕 짚으며

간다 이미 노랗게 눌린 억울한 손톱을 가졌으니

눈썹이 사라져도 괜찮지, 사랑했으므로

다리가 부러진 건 괜찮아

마음이 기다랗게 몸을 늘려 뱀이 되려 해도

무거운 소파들은 더 무거워지겠지

내가 자주 신던 슬리퍼도

너의 젖은 양말도,

그대로 괜찮아

 

 

 

 

 

 

* 서정시학, 2008년 겨울호.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견자] ....... 박용하  (0) 2009.02.04
견자見者 ....... 박용하  (0) 2009.02.04
조용한 아침 [류외향]  (0) 2009.01.28
거미, 혹은 언어의 감옥 [유하]  (0) 2009.01.28
저, 건너 [이영유]  (0) 2009.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