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소리 한 다발쯤 흘려놓고 갈까
외로이 남아, 나 대신 너를 지켜보라고
너는 빈 의자에 눈물을 앉혀놓을까?
뻥 뚫린 입속에 내성적인 네 혀가 더욱 침잠하겠지
나는 안경을 스무 개쯤 벗어낸 후 걸어가리라
안녕, 비닐봉지에다 한 모금 인사를 남겨놓을게
나중에 네가 부스럭대며 꺼내볼 수 있도록
창문 밖으로 부드럽게 흘러
간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나는 빨갛고, 추웠고, 가난했으므로
엉덩이를 자꾸 까 보여줬지만
너는 웃었지 가장 슬픈 표정으로
마치 처음 엉덩이를 보았다는 듯
과거에 불꽃처럼 무모했던 동공이여
이제 그만 스러지렴 여름은 시들었다
30cm 지팡이를 콕콕 짚으며
간다 이미 노랗게 눌린 억울한 손톱을 가졌으니
눈썹이 사라져도 괜찮지, 사랑했으므로
다리가 부러진 건 괜찮아
마음이 기다랗게 몸을 늘려 뱀이 되려 해도
무거운 소파들은 더 무거워지겠지
내가 자주 신던 슬리퍼도
너의 젖은 양말도,
그대로 괜찮아
* 서정시학,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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