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조용한 아침 [류외향]

초록여신 2009. 1. 28. 01:56

 

 

 

 

 

 

 

 

 

나는 내 귀에서 소리를 지웠다

 

 

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까치는 누군가의 편지를 발목에 매달고 날고

까치는 여린 발목에 쇠사슬을 매달고 날고

 

 

사람들이 버린 내 잠의 텃밭, 여러 종류의 갈대와

식물도감에도 들어 있지 않는 풀과 꽃들 다투며 키 세우고

(모르는 사이, 테두리가 뭉개진 미지의 형상들과 잠깐

잠깐 만나는 사이, 나의 잠의 텃밭 속에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내 소유가 아닌 잡목과 잡목 위의

한 쌍의 까치와 까치가 베어먹다 남겨둔

열매, 그 과실수가 정연하게 자라고 있는 경계

그 너머를, 기웃거린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건널 수 없는 강과

건너서는 안 되는 강과

제 살을 찌르는 핏빛 가시덤불을 본다

 

 

나는 해뜨는 소리에 눈을 떴다

부드럽고 정교한 햇살의 그물에 걸린 생태계를 훑어보았다

까치 한 마리가 잘린 발목을 모두어 필사적으로 날아오르려 할 때

집 가까운 곳 무허가 소각장에서

뜬금없는 소식처럼

연기 한 줄기 피어올랐다

 

 

 

 

* 꿈꾸는 자는 유죄다, 천년의시작(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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