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거미, 혹은 언어의 감옥 [유하]

초록여신 2009. 1. 28. 00:23

 

 

 

 

 

 

 

 

 

난 외로움의 힘으로 집을 짓는다 몸의 내부 깊은 곳

음습한 욕망을 나는 은빛 유혹으로 바꿀 줄 안다

꽁무니에서 나오는 가녀린 실의 끈적거림

나는 그만큼 삶에 집착한다 그러니까

내 집은 내 욕망의 무늬이자 미로인 셈이다

내가 풀어 놓은 무늬에 때론 내가 헤매기도 하기에,

 

 

오늘도 하루 종일 하루살이를 기다렸다 세상의 온갖 방황도

내 집에 갇힌 이상, 내 좋은 대리 경험의 양분일 뿐이다

먹이는 고스란히 내 집의 실 기둥으로 뽑혀져 나온다

먹이들의 살과 뼈를 원료로 이루어진 집,

나는 안다 자기 몸이 결국 자기 덫이었음을

적어도 나는 그 죽음의 덫을 내 식으로 육화시킬 줄 아는

교활함을 지녔다...... 저주받았으므로, 난 즐겁다

자, 내 분신 같은 새끼들아, 날 남김없이 먹어 해치워다오

난 내 욕망의 무늬를 끝없이 확대재생산 하고 싶다

그리하여 모든 너 안에 내가 살고 싶다

 

 

 

 

* 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