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발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시(詩)를 쓴다, 공책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옛 동료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
나는 산골 마당이 새 직장이고
시가 유일한 직업이다
월급도 나오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지만
나는 이 직장이 천직(天職)인 양 즐겁다
나의 새로운 직장 동료들은 풀꽃과 바람과
구름, 내가 중얼거리는 시를
풀꽃이 키를 세우고 엿듣고 있다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내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
내일이면 그들은 더 멋진 시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올릴 것이다
이 직장에서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마당으로 출근한다
*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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