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끌리듯 걸어가 가시나무 앞에 선다 나무와 나무의 곁 무너진 집터엔 한때 뜨겁게 달아올라 사람의 등을 품어주던 구들장이 검은 몸을 뒤집고 삐죽거린다
가시의 몸속에 꽃을 품고 있구나 탱자나무 하얀 꽃무더기 바라보는 동안 새들은 가시나무 깊이 몸을 들이밀고, 독처럼 날을 세운 가시들 틈에서 곡예를 하듯 꽃들은 피어나고 있다
문득 건너편 아이들의 웃음이 가시에 걸려 매달린다 햇살이 권태롭다 푸른 가시를 움켜쥔다 넌 네게 자유롭지 못해 가시들이 일제히 목을 지른다 손바닥에 피어나는 점점이 붉은 꽃
탱자나무를 뒤로한 채 돌아선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직 난 벗어나지 못했다
* 적막, 창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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