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악기들 부서질까 두렵다
억새의 지휘에 맞춰
지치게 지치게 바람곡을 연주하는 악사들
경기장의 체조선수처럼 나무들은 서 있고
무용수 같은 갈대 사이에서 현을 켜는 악사들
내 푼돈 모아 저놈들에게
연미복이라도 한 벌 사 주어야겠다
아니 달빛이 먼저 알고 은회색 구두를 신겼구나
햇살의 막이 올라야 끝나는 어둠 음악회
밤 새워도 그치지 않는 저 귀뚜라미의 연주
아마도 저놈들은 돈벌이가 안 되는가 보다
저 소리들 서로 얽혀 내 귀에까지 오다가
더러는 나무둥치에 부딪쳐 깨어졌거나
물소리에 섞여 없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
벚나무 둥치와 전신주와 기둥들이 부순 소리들
물방울들이 먹어치운 선율들
그 난장을 딛고 간신히 걸어온
제일 가늘은 소리 하나가 내 귀를 적신다
쓰르라미를 재워놓고 혼자 켜는
귀뚜라미의 연주가
*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 서정시학, 2008.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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