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저 물 밀려오면 [허수경]

초록여신 2008. 8. 23. 11:49

 

 

 

 

 

 

 

 

 

저 물 밀려오면 무얼 할까,

그 물 위 수 놓을까, 어쩔까

그 물 위 한 뭉텅이 짐승의 살 다질까, 말까,

그 물 위 모래밭에서 깨어난 새 마늘 찧을까, 말까,

그 물 위 햇고추 말릴까 말까, 무얼 잃을까

 

 

햇빛 다지듯,

달빛 으깨듯,

그날 읽었던 책장에 든 낡은 짐승들이 사라진 기억

다질까, 으깰까, 웃다가

이 생에 한 사람으로 태어나

 

 

먼 밤 잠 못 드는 저 물 밀려오는 소리, 듣는

그 물 위 당신 뱉어낸 별들 안아 들일까, 말까,

그 물속 사라지는 저 빛 어쩔까, 나 말까

 

 

그러다가, 사라질까, 무엇이 될까,

잊어버릴까

 

 

 

 

 

*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문학과지성사(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