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천지가 지워진다.
멧새들 바쁜 부리도 지워지고
검은 세로무늬 등빛도 지워져 흰색.
모든 현실이 지워지고
지워진 현실 사이로
사랑을 등진 그대로 멀리 지워진다.
현실이 지워지면
남는 것은 은유뿐인가.
방금 라디오에선 은유주의보.
이제쯤 그대 떠난 방도
구석부터 지워지고 있을 거다.
그대 몫이었던 윗목의 냉기도,
빨래를 개키며 떨쿠던 눈물도.
천지간이 눈인데
그대를 보낸 내 기침 소리마저
천천히 흐리게
지워지고 있을 거다.
조팝나무의 어깨까지도
천천히 그리고 흐리게.
* 귀한 매혹,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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