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 그늘의 발달 / 문학과지성사, 2008. 7. 18.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분 [문태준] (0) | 2008.08.01 |
---|---|
엎드린 개처럼 [문태준] (0) | 2008.08.01 |
똥 누는 시간 [장철문] (0) | 2008.08.01 |
물 좀 가져다주어요 [허수경] (0) | 2008.08.01 |
낯익은 당신 [허수경] (0) | 2008.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