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화분 [문태준]

초록여신 2008. 8. 1. 17:17

 

 

 

 

 

 

 

 

 

 

사랑의 농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느니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나의 하루와 노동은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흘러 흘러갔어라,

먼 산 눈이 녹는 동안의 시간이

 

 

죽은 화분에 물을 부어주었느니

 

 

풀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풀이 와

어떤 곳으로부터 와

 

 

풀은 와서 돋고

몸이 커지고 스스로

풀꽃을 피우고 문득

여인이 되었어라

 

 

수심(愁心)을 들고 바람 속에 흔들리거나

내가 돌아앉으면

눈물을 달고 어룽어룽 내 뒤에 서 있었노라

 

 

어디로부터 왔느냐

묻지는 않았으니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묻지 않았듯이

 

 

우리는 이 화분을 들고

앞서고 앞서서 가거나

늦추고 늦추어서 갈 뿐

 

 

우리는 이 화분을 들고

서로에게 구름 그림자처럼 지나가는 애인

나는 나로부터 변심하는 애인

 

 

그러하니 사랑이여,

우리가 만나는 동안은

샘물을 길어서

주름을 메우고

서로의 목을 축여다오

 

 

 

 

 

* 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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