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파고드는 햇살 국경 너머 젖은 거삼나무 비릿한 이끼 냄새 굉음으로 먹먹한 이 거대한 물의 장막 앞에서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수 없을까? 악마의 목구멍에 추락하기 위해 밀려드는 이 황홀한 물의 심판대에서 조난 영화의 생존자처럼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수 없을까? 그늘진 계단에 앉아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던 밤 폭포처럼 계단이 흘러내려 우리를 멀리 쓸어 버릴 것만 같았지 이봐 우리는 각자 먼 길을 돌아 이토록 흐느끼는 신의 음부에 마침내 도달했어 북쪽으로의 여행, 자살한 병사의 익사체, 그물을 벗어나는 물고기, 우물 파는 자와 정탐꾼, 한밤의 홍수, 천둥소리, 촉수를 세운 물의 사전이 온몸을 세차게 훑고 지나간다 몇 시간 두의 날씨를 점치는 구름과 물보라의 미세한 떨림 위로 터지는 아찔한 신의 오르가슴,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 검은 표범 여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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