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약국에서 조신하게 약을 팔고
밤이면 날카로운 발톱을 찍어 나무에 기어오르지
가로수 꼭대기 은신처에서 사냥을 준비한다
살의로 번뜩이는 눈
흰 가운을 벗어 던지고
윤기 나는 털을 정성스레 고른 후
등뼈를 이완시켜 굳어 있던 근육을 푼다
안개 낀 여름밤
아파트 배관을 타고
창이 열린 베란다로 스르르 들어간다
거실을 지나
아이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겹겹의 어둠 속에서
기습적으로
소리 없이 다가가는 위험
그의 고향은
갠지스 강의 두 원류가 만나는 곳
이끼와 공작고사리로 뒤덮인 사원
순례자 여인을 표적으로
어미에게 첫 사냥을 배웠다
밤새 기도하던 사람들은
다음 날 여자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표범약사는
가로수 가지에 시체를 걸쳐 두고
머리부터 살점을 깨끗이 발라 먹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피의 위안으로
문명을 견뎌 내는 표범약사
* 검은 표범 여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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