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오래된 열쇠 [이덕규]

초록여신 2008. 7. 3. 12:39

 

 

 

 

 

 

 

 

 

 

어딘가에 달콤한 그 무엇을

깊숙이 숨겨놓은 채

잠궈버리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

일벌 한 마리가 분주히

이 꽃 저 꽃

봉오리 속을 들락거린다

 

 

그러나 꽃은 단 한 번도

마음의 곳간

활짝 열어주지 않고

너무 쉽게 녹슬어 떨어진다

 

 

다시는 잊지 않으리

 

 

온몸에

붉은 쇳가루를 뒤집어쓴 그가

날아왔던 허공 길을

다시 훤하게 읽으며 돌아간다

 

 

아무것도 걸지 않은 채

잠겨 있는, 처마 끝에 매달린

저 수많은 벌집 구멍들, 활짝 피었다

 

 

 

 

 

*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 문학동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