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Re: 슬픔의 진화 [심보선]

초록여신 2008. 6. 16. 11:02

 

 

 

 

 

 

 

 

 

 

내 언에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그러고는 긴 침묵)

 

 

나는 하염없이 뚱뚱해져간다

모서리를 잃어버린 책상처럼

 

 

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다!

심지어 그 독하다는 전갈자리 여자조차!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슬픔에 대해 아는 바 없다

공에게 모서리를 선사한들 책상이 될 리 없듯이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어떤 종류의 가구로 진화할 것인가?

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질문이었다

 

 

( 그러고는 영원한 침묵)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문학과지성사, 2008.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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