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신데렐라 [김혜순]

초록여신 2008. 5. 19. 19:41

 

 

 

 

 

 

 

 

 

 

당신과 나의 도시는 얼음으로 만들어졌지
얼음블록 위를 미끄러져 가는 얼음마차
휘이잉 솟아오르는 얼음 말들의 눈부신 갈기털
얼음채찍 잘도 휘두르는 얼음마부들
오늘은 무도회의 날 얼음궁전에서 들려오는 얼음종소리
하늘에서 천사의 발가락들처럼 내려오는 얼음샹들리에


환하게 빛나는 푸르디푸른 얼음에 둘러싸인 나무들
얼음 속에 갇혀서 춤추며 돌아가는 내 사랑하는 얼음사나이
얼음육체 섞어서 사랑하고 애 낳고 춤도 추었지


우리가 만든 세상은 어린 아가의 상여 행렬처럼 푸르고
이곳 사람의 눈빛은 얼음방울로 만든 것처럼 눈멀어 깨끗하지
어디 한번 둘러봐 변압기 속처럼 추위로 만든 내 세상
겨울 물고기들의 조용한 얼음거실에서 끓어오르는 얼음주전자
아무도 여기 들어올 수는 없어, 오직 당신과 나뿐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고드름같이
살을 파고드는 차디찬 저 계모들의 발톱
저 세상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척
이렇게 신선하게 보관했다가 플러그를 빼버리려나 봐
납같이 뜨거운 손바닥에 맞으면
피는 썩고 몸뚱이는 통나무처럼 넘어졌었지
마주 불어온 두개의 찬바람처럼 거기선
서로의 몸을 쑤욱 뚫고 지나쳐가야만 했지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오직
얼음 속에 봉인해둔 서로의 얼굴만 생생하게 담겨있을 뿐
우리의 품속에서 북극 남극이 반갑다 포옹하고
계단에 떨어져 얼어붙는 내 얼음슬리퍼


그러나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얼음닭이 길게 울었어
한없이 몸속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곳엔 정말 가기 싫어
저곳에 붉은 꽃 핀 자리는 내 가슴을 꿰맨 자리
나 그 더러운 자리 다시는 보기 싫어


한밤내 얼음닭을 죽였어 울지 마! 입을 틀어막았어
희디흰 털을 뽑아 공중에 날렸어
그러나 이제 얼음궁전에 희디흰 닭을 바치고 돌아갈 시간


탁자 위의 무정한 시간이 마지막 잔을 들어 쭈욱 들이켜버렸어
당신의 손바닥 위에서 마지막 남은 얼음 조각이 반짝거렸어


마차는 달리고, 마차에서 눈보라처럼 쏟아지는 울음소리
얼음구두가 녹고 얼음마차도 녹고
채찍을 든 마부만 남았어
그가 물었어 "왜 자꾸 울어요? 재수 없게"

 

 

 

 

 

* 당신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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