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안녕, 김밥 [심언주]

초록여신 2008. 5. 18. 16:51

 

 

 

 

 

 

 

 

 

 

 

 김밥천국 아줌마는 천국을 말고 있어요. 어두운 하늘같은 김 한 장을 펼쳐 놓고 곤두서는 밥알을 꾹꾹 눌러요. 밥알 위에 당근 채찍 우엉 부엉 어영부영을 눕히더니 검은 멍석을 둘둘둘 말아요.

 잘린 것, 지지고 볶은 것들이 삐어져나오려 야단이에요.

 저 검은 파이프. 식도 같은 창자 같은 주유관 같은 하수구 파이프 속마다 일용할 바람을 가득 채우고

 기도하듯 김밥들이 엎드려 중얼대요. 꼬마김밥 누드김밥 김치김밥 치즈김밥. 등과 배를 맞대고 쟁반에서 중얼중얼 벽에서 중얼중얼

 

 

 김밥천국역에서 레가토로 우는 기차. 스타카토로 달리는 기차. 첫새벽에도 달리고 한밤에도 달려요.

 

 

 산짐승 울음, 언덕, 침대를 휘감아 버리는 어둠. 빅 사이즈 김밥 위로 어젯밤엔 참기름 바르듯 별이 쏟아졌어요.

 은총처럼 별들이

 

 

 

 

 

* 4월아, 미안하다 / 민음사, 2007.

 

 

 

 

 

 

.......

하루 종일 비가 내리네요.

비들은 창문에 달라붙어 미끄럼틀을 씽씽 타고요.

천둥, 번개에 놀라 땅바닥에 드러붙은 내 뱃속의 위장들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네요.

김밥천국의 여왕님!

저에게 김밥나라의 초대장을 보내 주실래요?

김밥 옆구리 찍, 터지는 소리라고요?

...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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