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갇히면 가져가고 싶은 책은?
ㅡ미래소년 코난에게 1
라틴어 사전
한 번도 속해보지 못한 시절에 대한 강렬한 향수.
미래에서 위로 찾지 못하는 이들의 자위.
모래사장에 앉아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바라본다.
살아 잇는 이들이 떠밀어 보내는 죽은 것들.
물고기 기호
꼬리가 긴 새
깃털이 달린 가면
나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시를 쓴다.
그리고
라틴어 동사 변형을 외운다.
숨, 에람, 에로,
그건
무인도에 앉아 육지에서 떠밀려 오는 것들을 수집하는 것.
숨, 에람, 에로,
또 그건
작은 유리병 속에 구조 메시지를 담아 보내는 것.
이를테면 이렇게
'숨, 에람, 에로, 나를 찾지 마세요.'
* 해바라기 연대기 / 랜덤하우스, 200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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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영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문학에』「동그라미 변주곡」 외 4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서강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옛날이야기와 기호학을 공부하고 있다.
.......
세상은 나를 무인도 주민으로 방치해 두었다.
그리하여,
라틴어에 의지하며 무인도 주민이 되었다.
그러다 지치면 다시 조난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나를 찾아 주세요. 나를 구조해 주세요.
(초록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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