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봄날은 착란 [윤예영]

초록여신 2008. 5. 13. 11:57

 

 

 

 

 

 

 

 

 

 

 

압력밭솥 꼭지 돌아가는 소리를 전화벨 소리로 듣고

전화벨 소리를 초인종 소리로 듣다.

초인종 소리에서 뻐꾸기가 날아가고

뻐꾸기시계에서 아기가 튀어나오다.

아기가 댕글댕글 1시를 알리면

그 여자 플러그를 꽂고 글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애초에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 여자 애초를 잡아 뻐꾸기시계 속에 가두다

뻐꾸기는 시계 밖으로 아기를 떨어뜨리고

뻐꾹, 뻐꾹, 뻐꾹, 뻐국

미쳤나 봐, 1신데도 뻐꾹, 뻐꾹 뻐뻐꾹

뻐꾸기 울음소리가 깨알 같은 글자로 공중에 쏟아지고

 

 

너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너는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뻐꾹, 뻐꾹, 뻐뻐꾹

 

 

아기는 깨알 같은 글자를 주워 먹고

얼굴에 붙여 주근깨를 만들고

그걸 징검다리 삼아 뛰어다니며 글자들과 합창을 하고

 

 

나도 너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뻐꾹

알았지 뻐꾹

알았지 뻐꾹

 

 

어디선가 또 회전목마가

회전목마가 돌아가기 시작하다

목마의 목마다 걸려 있던 방울들이

깨지도록 흔들리다

댕글댕글 댕댕글

햇빛도 달빛도 그 어떤 빛도 아닌 오후 1시의 빛살들이 일제히 흔들리고

댕글댕글 댕댕글

그 여자, 회전목마에 올라타서 글자들을 뱉어내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뻐꾹 뻐꾹 뻐뻐꾹

알았니?

알았지?

알았니?

알았지?

댕글댕글 댕댕글

 

 

그 여자,

뻐꾸기로 비행기를 접어 창밖으로 날리다

그 여자,

아기를 시계 속에 집어넣다

그 여자,

글자들을 쓸어 담다

그 여자,

알약 같은 글자들을 삼키다

그 여자,

오후보다 깊은 구렁으로 가라앉다

 

 

 

 

 

* 해바라기 연대기 / 랜덤하우스, 200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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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영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문학에』「동그라미 변주곡」 외 4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서강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옛날이야기와 기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