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발정 난 똥개의 배고픈 눈빛
살구나무 가지 속으로 숨어들자
살구나무 얼굴은 한꺼번에 연분홍빛 숨결을 토해내고 만다
덩그런 바윗돌도 어쩔 수 없이 이마가 빛나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봄바람이 좋아서
어쩌다가 오래 버려 두었던 화단을 다시 꺼내 손질하며
지나가는 봄바람 서너 줄기를 모종하기로 한다
어떻게 해서 매번 봄바람을 놓치고 말았단 말인가
봄바람을 화단에 모종하자
바람난 꽃나무들 옷 갈아입는 소리가 낭자합니다
잊혀진 애인의 이름이 꽃나무에서 웃고 있습니다
사촌 누이의 젖가슴을 좋아했던 기억이 꽃나무에서 피어납니다
찔레꽃 노래를 부르던 젊으실 적 어머니의 얼굴이 꽃나무에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보리밭에 누워 있으면 하늘처럼 푸르러지던 몸이 생각납니다
화단 밭에서도 여러 얼굴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봄바람이 좋아서
저녁을 먹지 않고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
잔뜩 이야기를 밴 화단
집 바깥을 함부로 나온 어린 별들에게도
물을 주고 있다
봄, 화단, 봄바람처럼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어린 별들 졸린 듯이 눈 깜박여도.
*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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