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동생은 풀처럼 흔들리고 싶다고
소를 몰고 들로 나갔지
언제나 그랬듯
삼십 년이 넘는 그 세월 동안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잔소리를 달고 사는 아버지
그래도 바람이 분다는 것은 다행이었어
침묵이, 쓸쓸한 가축 같은 침묵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가르쳐 준 저 바람
아침에 일어나면 몇 년이 지나도
키가 크지 않는 대추나무가
후드득 잎을 떨구고
수압 낮은 수돗물은 기침하듯
쿨럭쿨럭 물을 쏟아 냈지
문득 집 생각하면
오래 씹어도 따스해지지 않는 식은 밥과
부엌 천장에 매달려 흔들리는 거미의 집.
그리고 더디게 아주 더디게 발효되는
아랫목 누룩더미들
이런 것들.
*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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