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믐밤 [김창균]

초록여신 2008. 2. 7. 11:54

 

 

 

 

 

 

 

 

 

 

 

 

삼십 촉 알전구가 어둠을 밀어 내는 저녁이다

이 시간에는 늘 그래 왔듯이

늙을 대로 늙어 주름이 살처럼 굳어 버린 얼굴을 한 아버지가

深海魚처럼 안방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그믐밤에는 짐승들이 하얗게 똥을 싸고 가는

텃밭을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올 빠진 털옷처럼 반쯤 넋을 놓고

골방에 담겨

밤참으로 팅팅 불은 국수를 먹기도 했다.

누나를 꼬시러 온 동네 청년들은

바람구멍 숭숭 뚫린 창호지 문을 등진 채

사랑방에서 몇 패를 돌리며 민화투를 쳤으나

시간은 더디게 갔다.

내 오랜 기다림의 끝이었다가

다시 시작인 그 작은 방.

마당 귀퉁이 나이 든 대추나무 위로

싸락눈 쌓이는 소리 점점 사위어지는데

바람은 젖은 옷처럼

내 살에 척척 달라붙어싸 가곤 했다.

 

 

 

 

 

*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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