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촉 알전구가 어둠을 밀어 내는 저녁이다
이 시간에는 늘 그래 왔듯이
늙을 대로 늙어 주름이 살처럼 굳어 버린 얼굴을 한 아버지가
深海魚처럼 안방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그믐밤에는 짐승들이 하얗게 똥을 싸고 가는
텃밭을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올 빠진 털옷처럼 반쯤 넋을 놓고
골방에 담겨
밤참으로 팅팅 불은 국수를 먹기도 했다.
누나를 꼬시러 온 동네 청년들은
바람구멍 숭숭 뚫린 창호지 문을 등진 채
사랑방에서 몇 패를 돌리며 민화투를 쳤으나
시간은 더디게 갔다.
내 오랜 기다림의 끝이었다가
다시 시작인 그 작은 방.
마당 귀퉁이 나이 든 대추나무 위로
싸락눈 쌓이는 소리 점점 사위어지는데
바람은 젖은 옷처럼
내 살에 척척 달라붙어싸 가곤 했다.
*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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