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POEM

그녀 [배용제]

초록여신 2005. 7. 19. 23:19
거리에서 한 여자가 스쳐간다 불현듯 아주 낯익은, 뒤돌아본다 그녀는 나와 상관없는 거리로 멀어진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철 지난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처럼 그녀는 기억의 지느러미를 흔들고 거슬러 오르면 전생의 내 누이, 그보다 몇 겁 전생에서 나는 작은 바위였고 그녀는 귀퉁이로 피어난 들풀이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벌레였고 나는 먹이였거나, 하나의 반짝거림으로 우주 속을 떠돌 때 지나친 어느 별일지 모른다 뒤돌아보는 사이, 수천 겁의 생이 흘러버리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쳐간 바람, 또는 향기는 아니었을까 반짝이며 내 곁을 지나친 무수한 그녀들, 먼 별을 향해 떠나가고. _ 배용제, '이 달콤한 감각'(282) 중에서 * 쨍한 사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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