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공룡 같은 슬픔 [강우근]

초록여신 2024. 4. 26. 19:12

공룡 같은 슬픔
강 우 근








다 똑같은 공룡은 아닐 것이다
오르니톨레스테스는 날아다니는 곤충을 사냥했다고 하지만
날개를 가진 곤충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오르니톨레스테스도 있을 테니까

우리들 중 누구도
영원히 인류에게 기억될지도 모르지
우리의 목은 점점 뻣뻣해지고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있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아무도 모르는 행동을 해보자
주말 아침에 깨어나
하품을 백번쯤 하고
열가지 방식으로 귤을 까먹고
오지로 산책을 나서고
수액을 찾으러 나무에 오르는
개미와 뜻 없이 인사를 나누자
너무 크고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을
한눈에 보기 위해 지금도 누군가는 모형을 만들고 있지
우리가 만든 지구본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동상이 온화한 미소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몇억년 전에 멸종된 공룡은
열대어가 사는 어항의 장식으로, 초등학생의 가방 고리로, 샐러리맨의 침대 쿠션으로 남겨져 있다
어디에나 공룡 같은 슬픔이 있다


_《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창비, 2024)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다 [정현종]  (0) 2024.04.27
갠지스 [박형권]  (1) 2024.04.26
<초록> 시 모음  (0) 2024.04.26
닮아간다는 건 얼마나 달콤한 범죄인가[박병란]  (0) 2024.04.24
벚꽃 잘 받았어요[김선우]  (0)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