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의 평안함
박 형 준
강이나 바다가 모두 바닥이 일정하다면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깊이가 같을 것이다
그러면 나무의 뿌리가 땅 밑으로 뻗어나가는 것과
허공을 물들이는 잎사귀의 춤 또한 일정할 것이다
저기 나무 속에서 사람이 걸어나오도록 인도하는 것이
봄이라면
마음속에서만 사는 말들을 꺼내주는
따뜻한 손이 또한 봄일 것이다
봄꽃들은 허공에서 우리를 기쁨에 넘쳐 부르는 손짓이며
누군가 우리를 그렇게 부른다면
우리 또한 그처럼 잊힌 누군가를 향해 가리라
_《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창비, 2020)
봄날은 간다,
여름은 오고,
누군가 봄날처럼
그렇게 떠날 것만 같아서
슬픈 봄날이다.
봄의 평안함
또한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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