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봄밤이다 1 /장옥관

초록여신 2023. 3. 21. 06:47

봄밤이다 1
  장 옥 관









돼지가 생각나는 봄밤이다
돼지감자가 땅속에서 굵어가는 봄밤이다
시커먼 돼지들이 벚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는
봄밤이다 하이힐을 신은 돼지
뻣뻣한 털로 나무 밑동을 자꾸 비벼대는 봄밤이다
미나리꽝엔 미나리가 쑥쑥 자라고
달은 오줌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르고
여린 꽃잎은 돼지의 콧잔등을 때리고
깻잎머리 여중생들이 놀이터에서 침을 퉤퉤 뱉다
돼지를 만나는 봄밤이다 봄밤에는 돼지가 자란다
천 마리 만 마리 돼지들이 골목을 쑤시다가
캄캄한 하수구로 흘러드는 봄밤
풀어놓은 돼지들을 모두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띄우고 싶은
봄밤이다



_《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문학동네, 2022)



어제는 목련의 속삭임이 더 많아지는 봄밤이었다.
누가 누가 더 자랐을까
오늘은 그 목련의 머리를 헤아리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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