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정 진 규
아픈 것도 편안해야 한다. 편안하지 않다는 것의 수선스런 드러냄은 엄살이다. 감춤이다. 포즈다. 도구로 끝나는 도구는 몸이 아니다. 몸은 그런 짓을 본래부터 할 수가 없는 태어남이다. 알이다. 절대 수용이다. <일상>이라는 말은 이완과 타성이라는 타기의 관습이 아니라, 그러한 타기의 관습조차 다 거쳐낸 다음에 생체 그 자체로 응집된 진실이다. 알이다. 초월을 꿈꾸는 자는 초월을 버린다.
궁핍한 시대에 좋은 시가 나온다는 말을 서둘러 쉽게 해서도 아니 된다. 그것 또한 궁핍이다. 그런 말에는 비켜가기가 있다. 교활함이 있다. 궁핍을, 그런 상처를 몸으로 체득한 자는 그런 말을 쉽게 하지 않는 법이다. 그저 <일상> 속으로, 그 생체 속으로 들어가 세들어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고마운 일이어서 오늘도 나는 거기에 기대고 있다. 편안한 상처! 상처와 몸을 섞으면 상처도 편안하다.
_《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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