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에 대하여
여 태 천
내가 뭘 동의했는지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걸려 오는 전화.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해서
낮고 조용히 파고드는 목소리.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동의서 얘기도 하고
거기에 내가 동의했다고도 하고
그래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고
복음 전하는 목소리.
내가 수줍음을 많이 타는 걸 알고 있는 친구일까.
아니면 일면식 없는 동사무소나 세무서 직원일까.
제대 말년까지 괴롭히던 눈이 찢어진 이 병장이라면,
나는 그만 덜컥 겁이 난다.
이렇게 아무도 만나지 않고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사람이 무서워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나를
도대체 저이들은 어떻게 알아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몇 날 며칠을 생각해도
곰곰이 또 생각해도
나는 무섭다 무섭기만 하다.
안녕하시냐니?
사람이 죽어도 눈도 끔쩍하지 않는 이 시절에
마음만 먹으면 누가 뭐하는지 훤히 알 수 있는
저이들이 무섭기만 하다.
무서워서 파리만큼 작아져야겠다.
저이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쥐새끼 모양 꼭꼭 숨어야겠다.
_《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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