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구두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신 철 규
면도를 할 때마다 깎여나가는 감정들이 있다
나는 거울을 보며 턱을 쓰다듬는다
입술이 시리다
부드러운 계절은 갔다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
빛과 함께 열기가 흘러나온다
형광등 빛이 면사포처럼 내려와 사람들의 얼굴을 노랗게 물들인다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 흐리게 일렁인다
몇은 낙엽처럼 웃고
몇은 메마른 가지처럼 몸을 떤다
웃음과 울음이 섞인 얼굴로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술잔을 건넨다
마주 앉은 사람의 표정에서 나의 표정을 떠올린다
가끔은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느라
입을 다문다
말은 얇은 막이 되어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린다
신발을 바꿔 신고 간 사람은 있는데 신발 주인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실내화를 자기 신발이라고 착각하고 택시 안에서 그 사실을 불현듯 깨달을지도 모른다
구두 속에는 이상한 공기가 흐른다
발을 밀어 넣을 때 빠져나온 음모들
낙엽이 구른다
가벼운 낙엽이다
무거운 낙엽은 바닥에 붙어 있다
물기를 머금은 채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장례식장 앞 교회의 첨탑이 먹구름을 찌르고 있다
조금만 구름이 가라앉으면 먹물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다
불 꺼진 약국 앞에 서 있었다
세상에는 저렇게 많은 약이 있지만
그 많은 병이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끝을 보고 걸었다
거기가 세상의 끝인 것처럼
젖은 신발이 문 앞에 놓여 있다
_《심장보다 높이》(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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