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제국
김 선 재
다가서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서는 그것이 물을 읽는 법이라고 말할 때, 바리안나무 뿌리 한 뼘이 지상으로 내려서던 것을 기억한다
빛바랜 군도들이 밀물에 잠겨갈 때 너는 소문 없이 한 발 물러서서 산을 넘어가고
비껴가던 날개들이 엉켜 적운이 솟고 천 개의 문 뒤에서 하늘 가득 바람을 널어 말리니 햇볕이 시들고 젖은 옷깃도 따라 식어, 열린 하늘을 돌아보는 동안 무적(霧笛)들이 파도가 되어 돌아온다
지상을 뛰쳐나간 새와 자오선을 넘어가는 바람은 알겠지 사람의 체온은 한사코 수평이 되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너에게 다가서다가 또 물러서다가 잠이 들거나 물살에 담긴 말을 읽다가 흘려보내거나
지구는 다시 저물어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
나는 아직 기억해
다가서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오는
온 생을 털어 만든 당신의 제국을
_《얼룩의 탄생》(문지, 2012)
..
가을이면 더 바쁜 구름나라,
그 구름의 제국.
구름을 만드는 구름기술자들은 바쁘다.
그 아래있는 인간나라,
그 인간의 제국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쁘다.
하지만,
짧은 계절,
그 계절에서 인간의 수명을 느끼는
나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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