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무에 대하여 [이성복]

초록여신 2022. 9. 2. 06:39


나무에 대하여
이 성 복









때로 나무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
이다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도 잎새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것이다 무슨 부끄러운 일이 있
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왼종일 마냥 서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곳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
을 것이다 몸통과 가지와 잎새를 고스란히 제 뿌리
밑에 묻어 두고,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_《래여애반다라》(문지, 2013)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의 알고리즘[이미산]  (0) 2022.09.03
거미 여인 [신철규]  (0) 2022.09.02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강연호]  (0) 2022.09.01
9월도 저녁이면[강연호]  (0) 2022.09.01
여행자 나무 [김명인]  (0) 2022.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