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근시
김 명 인
낭비가 없는 가을 햇살이다
손바닥으로 비벼대는 들판의 이삭들
멍텅구리 배에 옮겨 싣고
하늘 복판까지 흘러가고 싶다
채울 길 없는 허기가 저희끼리
푸른 철벽 가운데로 끌고 나온 낮달
은산을 넘는데 어느새 절량(絶糧)이어서
먹거리로나 앞장세운 삽사릴까?
어미 구름 저만치서
걸음마 따라가며 시큰둥이다
살청(殺靑)의 세월 거기도 있다는 게지
내 눈은 등 뒤에서도 돋아나고
구름은 수십 번 더 맹목으로 찢긴다
그러면 세상의 근시들은 보게 될까?
제 안의 어떤 허공이
하늘 밖으로도 펼쳐 보이는 푸름을
_《여행자 나무》(문지, 2013)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과 겨울 사이 [이응준] (0) | 2022.08.26 |
---|---|
북회귀선 [최삼용] (0) | 2022.08.26 |
이파리가 나무에서 멀어지는 일을 가을이라 부른다[박연준] (0) | 2022.08.26 |
가을 [박시하] (0) | 2022.08.25 |
저녁기도 [류시화] (0) | 2022.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