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가을 근시[김명인]

초록여신 2022. 8. 26. 20:47


가을 근시
   김 명 인









낭비가 없는 가을 햇살이다

손바닥으로 비벼대는 들판의 이삭들

멍텅구리 배에 옮겨 싣고

하늘 복판까지 흘러가고 싶다

채울 길 없는 허기가 저희끼리

푸른 철벽 가운데로 끌고 나온 낮달

은산을 넘는데 어느새 절량(絶糧)이어서

먹거리로나 앞장세운 삽사릴까?

어미 구름 저만치서

걸음마 따라가며 시큰둥이다

살청(殺靑)의 세월 거기도 있다는 게지

내 눈은 등 뒤에서도 돋아나고

구름은 수십 번 더 맹목으로 찢긴다

그러면 세상의 근시들은 보게 될까?

제 안의 어떤 허공이

하늘 밖으로도 펼쳐 보이는 푸름을





_《여행자 나무》(문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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