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띠를 뒤집어 추억에 붙여놓은 건 누구인가
이 수 정
깨어서 건너가려 한다.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에서 울리는 시보를 들으며 잠에 잠을 겹쳐 덮고 눈감으면 날아오르는 나비들이 보인다. 내가 스쳐 보낸 시간 속에서 날개를 키운 나비, 일순, 그것들이 일탈해가고 빈 하늘만 밀려와 잇다. 울먹이며 눈을 훔친 주먹에 고운 나비의 기억이 묻어나지만, 어떤 꿈을 펼쳐도 나비들이 엮어냈던 지난날의 청명에 닿을 순 없다. 비를 몰아온 현기증만 숲을 흔들고 있다.
개어나 건너려고 한다. 책상을 당기며 내가 알 수 없는 시간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책장을 넘기며 밤과 싸운다. 내 속의 밤이 차올라 울렁대는 시간 너에게로 이어지다 이어지다 지워지는 계단들, 시간의 디를 뒤집어 추억에 붙여놓은 건 누구인가. 추억의 순환 회로에서 나는 시차를 건너가려는 날개 없는 새이고 행성이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문학동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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