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연필 [이수정]

초록여신 2018. 11. 25. 09:51

연필 

 이 수 정









순백의 중심에 서고 싶다

한 줄기 검은 광맥을 찾아

깎아낸다

물결치는 기억을

깎아낸다



투명한 정신에 닿을 때까지

들러붙은 때를 떼어낸다

목소리를 내려면

숨겨둔 그늘을 내놓아야 한다



쓰는 만큼 깎는 일

드러난 본심을

뾰족하게 깎는 일

부러뜨리지 않고 끝을 다듬는 일



섬세한 정신의 정상이 밝아오는 새벽

순백의 중심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문학동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