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목련나무 [도종환]

초록여신 2017. 2. 26. 08:21


목련나무

  도 종 환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

그림 전시장 문을 열고 나오다

낯익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목련나무를 만났다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목련 잎을 두 손으로 잡으며 나도 반가웠다

가끔 인편에 소식은 들었어요

인편이란 말에 목련나무는 가만히 웃었다

웃는 입가로 자잘한 물살이 번져나갔다

화사한 목련꽃으로 피어 있던 날

꽃잎 하나가 휘어져 떨어져도 철렁

가슴이 내려앉던 봄날이

목련나무와 나 사이에 있었다

백자 항아리 같던 해사한 얼굴 위로

바람이 새긴 빗살무늬가 지나가고 있었다

목련 잎에도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어 있고

빗줄기가 지나간 흔적이 눈에 보였다

늘 지켜보고 있어요 하고 말하며

천천히 돌아서는 긴 그림자 위로

나뭇가지가 휘청 흔들렸고

오후에는 가을비가 내렸다

오늘밤 찬비 뿌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목련나무 또 오래도록 볼 수 없으리라




*사월 바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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