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안부
김 소 연
엽서를 쓰고 있어요 너에게 쓰려다 나에게
오래전에 살았던 주소를 먼저 적었어요 엽서의 불충분한 지면에 고양이가 와서 앉았어요 고양이가 비킬 때까지 연필을 놓고 고양이가 비킬 때까지 연필이 제 그림자를 껴안은 채로 누워 있는 걸 바라보다 연필과 연필의 그림자 사이를 기어가는 개미를 지켜보았어요
아침에 세면대 속에서 만났던 두꺼비에 대해 엽서를 쓰려다 거울 속에서 보았던 검은 얼굴에 대해 쓰고 있어요 친해질 수 없었던 얼굴과 친숙해져버린 천한 사람에 대해
빵 부스러기로 축제를 여는 개미와
빵에 잼을 발라 허기를 비껴가는 나 사이에
잠깐의 친분이 싹트고 있습니다
엽서를 쓰고 있어요 나에게 쓰려다 두꺼비에게
조금 전에 만났던 누군가를 조금 전의 감정으로 회상하기 시작했을 때 엽서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그린 그림을 지우고 있었어요 지우개가 그림을 다 지울 때까지 연필이 제 그림자와 껴안고 누워 있을 때에 유서를 쓰려다 연서를 쓰게 된 사람에 대해 생각해요
뜨거운 물을 담은 물통을 껴안은 채
잠이 들었다가 쓰려다가
이 방을 썼던 사람들이 견뎠을 추위가
이불이 되어주었다고 쓰고 있어요
*수학자의 아침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의 환전소 [안현미] (0) | 2014.12.29 |
---|---|
새들은 새 획을 그으며 [정끝별] (0) | 2014.12.29 |
한 걸음 더 [정끝별] (0) | 2014.12.25 |
그런 것 [김소연] (0) | 2014.12.25 |
북 치는 소년 [김종삼] (0) | 2014.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