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빗소리
허 만 하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빛은 태어나고 부서진다
하늘을 쥐어짜며 뛰어내린
1억 년 전의 빗방울 자국
어둠의 극한에서 빛이 터지듯
땅바닥에서 부서진 자욱한 빗소리
초록색 식물의 왕성한 번식력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파충류 피부
짐승의 눈은 조용히 바라볼 뿐
따지지 않는다
짐승의 혀는 배고픔을 핥을 뿐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로 오염되기 이전의
야생의 순수
발자국이란 말을 넘어서서
백악기 비의 발자국 송송 드러내는
고성 계승사(桂承寺) 바위 벼랑 단면에서 부서지는 5월의 싱싱한 햇살
*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문예중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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