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비선글라스 [류인서]

초록여신 2013. 8. 31. 09:04

나비선글라스

 류 인 서

 

 

 

 

 

 

 

 

 

 

낯선 대륙을 향해 간다는 그의 배가 한동안 이 창가에 정박해 있었다

나는 그의 숨은 항로를 훔쳐보기 위해 자주 그 배의 갑판 위를 서성거렸다

두꺼운 유리창으로 들여다본 그의 방 탁자 위에는

풍경과 인물이 뒤섞인 퍼즐 상자와 항해일지가 낡은 지구의 옆에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벽면의 낮은 선반에는 갖가지 빛깔의 술병들이 있었고

뱃머리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난바다가 실려 있었다

등을 보이며 서 있는 그이 몸에서 비릿한 도심의 숲냄새가 번져나는 듯도 했다

어깨 높이를 떠도는 바다제비와 몇몇 구름 같은 섬들도 보였지만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 배를 구석구석 찬찬히 살펴보지 못했으나

그의 출항은 소리 소문 없이 이루어졌다

한 해 이른 아침, 정글 가운데 솟은 산꼭대기에서 햇빛을 쬐며 구름에 비친 제 몸의 그늘을 보고 있다는 그이 소문을 들었다

 

 

 

* 신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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