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선글라스
류 인 서
낯선 대륙을 향해 간다는 그의 배가 한동안 이 창가에 정박해 있었다
나는 그의 숨은 항로를 훔쳐보기 위해 자주 그 배의 갑판 위를 서성거렸다
두꺼운 유리창으로 들여다본 그의 방 탁자 위에는
풍경과 인물이 뒤섞인 퍼즐 상자와 항해일지가 낡은 지구의 옆에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벽면의 낮은 선반에는 갖가지 빛깔의 술병들이 있었고
뱃머리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난바다가 실려 있었다
등을 보이며 서 있는 그이 몸에서 비릿한 도심의 숲냄새가 번져나는 듯도 했다
어깨 높이를 떠도는 바다제비와 몇몇 구름 같은 섬들도 보였지만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 배를 구석구석 찬찬히 살펴보지 못했으나
그의 출항은 소리 소문 없이 이루어졌다
한 해 이른 아침, 정글 가운데 솟은 산꼭대기에서 햇빛을 쬐며 구름에 비친 제 몸의 그늘을 보고 있다는 그이 소문을 들었다
* 신호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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