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플라즈마 [김산]

초록여신 2012. 11. 26. 10:34

 

플라즈마

 -1985

 

 김 산

 

 

 

 

 

 

 

 

 

 

은하를 떠돌던 모든 방랑별은 각자 울음주머니를 갖고 태어났다. 눈부신 진푸른투명유리구슬을 날개 대신 겨드랑이에 감추고 대기를 날아다녔다. 건물과 건물, 골목과 골목, 복도와 복도, 에는 무방비의 완성되지 않은 소리들이 잠복하고 있었다. 내가 배운 최초의 균열은 차가운 열에 덴 추억들이었다.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기화하고 있는 것들을 나는 울음주머니에 차곡차곡 담았다.

 

 

 포장마차는 모든 기화의 발원지였으며, 성지(聖地)였다. 국수 다발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어머니의 실핏줄이 대기 속에서 팽창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정작, 뜨거운 것은 붉은 것이 아니라 새파랗게 질린 불빛이었음을 나는 이미 열살 때 체험하였다. 어머니의 식칼이 검지를 쓸고 지날 때 붉은 피가 아닌 새파란 울음주머니가 내 안에서 툭툭 터지곤 했다. 포장마차는 내가 배운 최초의 행성이었다.

 

 

 모든 은하의 문은 한번 열리면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당신의 몹쓸 사랑을 반추한다는 것이므로, 한번 열에 덴 사랑은 다른 문과의 통정을 뜻한다. 대략, 열리지 않는 문이란 자물쇠가 아니라 울음의 녹이었음을, 때문에 나는 풍부한 울음주머니를 가진 소년으로 늙어 갔다. 내 별은 멀었고 내가 사는 행성은 언제나 당신의 기화로 뿌옇고 아득하였으므로,

 

 

 울음의 부피가 커지면 주머니의 근육은 색이 바랬다. 오지 않는 당신을 받아쓰면 항상 백 점인데 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감나무 옆에 홀로 앉아 구슬치기를 했다. 구슬을 눈에 비추이면 새파란 물결의 지진이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흙먼지 손을 털고 밥 먹어라 부르는 할머니의 소리는 명왕성처럼 멀기만 했다. 마루에 앉아 숟가락을 들면 기화하지 못한 하얀 감꽃이 마당 가득 한 소쿠리였다.

 

 

-지난 토요일 정모에서 선물로 받은 '김산 시인의『키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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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다발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어머니의 실핏줄을 가끔 본다.

그럴 때마다 계실 때 잘 해야지 하지만 늘 출발은 제자리로 온다.

 

시인은 모든 은하의 문은 한번 열리면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나는 열려진 문도 잘못하면 폐쇄되어 사라지고 만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내가 사는 별은 지구라는 곳의 '시사랑'이었다.

청춘의 정점, 불타는 청춘의 순간에 만났던 이곳이 유일한 나의 별인지도 모른다.

 

그 내가 살고 우리가 살고 당신이 사는 별이 명왕성으로 퇴출되기를 바라지 않기에

오늘도 숱하고 많은 발자국을 찍으며 이렇게 또 왔다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시인의 울음주머니가 존재하는 곳,

이곳의 힐링의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힐링의 별!

시사랑에서

빛나는 詩民으로 정착하시길 소원한다.(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