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연보
김 선 재
한 번도 우리를 부숴본 적 없었다
명자나무는 스스로를 찔러 꽃을 피우고 아버지는 채찍처럼 이름을 휘둘러 나를 키웠다 이름은 상처와 같아서 소리 내어 부를 때마다 피가 흐른다
내 탓이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수리나무 밑 어두운 우리, 머리 위에서는 내내 마른 잎사귀들이 울었다 내일은 없었다 그건 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과거의 한때 얼굴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웃고 있다 내일은 어떨까 그것이 내 일이다
우리는 서로 밤마다 멀어졌다 그것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견디는 법 그러나 그것은 어제의 일, 이따근 바람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등을 후빈다 색깔 없는 구름들이 우리를 지키고 마른 잎사귀들이 우리를 덮고 우리는 흙이 되고 우리는 서로를 가두고 우리는 우리의 전부가 되고 우리는, 우리는 목 놓아 운다
뒤꿈치를 들자 가파른 자갈들이 굴러떨어진다 나는 오늘에서 어제를 지운다 그것이 내일이다 날마다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외운다 그것이 내 일이다 내일이었다
* 얼룩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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