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노숙(露宿) ……·안도현

초록여신 2012. 8. 18. 12:11

 

노숙(露宿)

안 도 현

 

 

 

 

 

 

 

 

 

 

양말 한 켤레를 빨아

빨랫줄에 널었다 양명한 날이다

빨랫줄은 두말없이 양말을 반으로 접었다

쪽쪽 빨아 먹어도 좋을 것을

허기진 바람이 아, 하고 입을 벌려

양말 끝으로 똑똑 듣는 젖을 받아먹었다

양말 속 젖은 허공 한 켤레가

발름발름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바지랑대 끝에 앉아 있던 구름이

양말 속에 발목을 집어넣어보겠다고 했다

구름이 무슨 발목이 있느냐고 꾸짖었더니

원래 양말은 구름이 신던 것이라 했다

아아, 그동안 구름의 양말이나 빌려 신고 다니던 나는

차마 허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 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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