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근심의 체험 [문태준]

초록여신 2012. 3. 16. 09:39

 

근심의 체험

문 태 준

 

 

 

 

 

 

 

 

은밀한 시간에

근심은 여러개 가운데 한개의 근심을 끄집어내 들고

나와 정면으로 마주앉네

그것은 비곗덩어리처럼 물컹물컹하고

긴 뱀처럼 징그럽고, 처음과 끝이 따로 움직이고

큰 뿌리처럼 나의 신경계를 장악하네

근심은 애초에 어머니의 것이었으나

마흔해 전 나의 울음과 함께 물려받아

어느덧 굳은살이 군데군데 생긴 나의 살갗처럼 굴더니

아무도 없는 검은 밤에는

오, 나를 입네, 조용히

근심을 버리는 방법은 새로운 근심을 찾는 것

빗방울, 흙, 바람, 잎사귀, 눈보라, 수건, 귀신도 어쩌질 못하네

 

 

 

* 먼 곳 / 창비, 2012,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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