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소리
문 인 수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
적막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
그런가보다. 여기 적막한 어머니 아버지 무덤가에 홀로 앉아
도 터지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소주 몇잔 걸치니, 코끝이 시큰거려 냅다 코 풀고 나니,
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져 왈칵!
적막하다. 내 마음이 또 그걸 받아 그득하고 불콰하여 길게 젖어 풀리는
저 소리들, 적막이 소리를 더 많이 낸다.
또 그 소리에 그 소리인 부모님 말씀,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 적막 소리, 창비(2012)
문인수 시의 소재들은 한결같이 한물갔거나 사라져 지상에 없는 것들이다. 예컨대 달빛 아래 놓여 있는 운동화는 세상에 없는 사람의 그것이요, 정치를 얘기해도 권력과는 이미 결별한 사람의 그것이 된다. 그러나 그가 사람이 사는 일의 헛됨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거꾸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어데서 오는가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한편 한편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본디 그 바탕에 슬픔을 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ㅡ신경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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