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늪 가이드 [최금진]

초록여신 2012. 1. 8. 18:01

 

늪 가이드

 최 금 진

 

 

 

 

 

 

 

 

 

늪이 언제부터 마을에서 지주 노릇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메탄가스가 픽픽 푸른 싹을 틔우는 늪의 영지에서

사람들은 한 해 소출로 거둔 무덤들을 늪 근처에 갖다바친다

이곳이 당신의 출생지라는 사실을 도시에선 늘 잊고 살았지만

늪의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사람들은

그 반경이 선사시대에 닿아 있고

마을 전체가 늪의 숨구멍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연꽃이 혓바닥을 내밀어 늪을 애무하는 공생관계처럼

황소개구리들이 하품을 할 때마다 노인들도 따라 웃고

늪에선 연신 거품들이 생겼다간 터지고

마을의 아기들은 모두 그때 태어난다

당신도 늪 축제가 열리던 그해 여름 질퍽한 모친의 자궁에서 태어났다

나선형의 집을 등에 지고

평생 거처를 옮겨다니는 늙은 우렁이들은 현명하다

늪 위에 집을 짓는 자들이라니

도시에서 집을 가져보지 못한 당신은 이제야 깨닫는다

안개는 젖은 휴지처럼 풀려나가 잠든 사람들의 코를 닦고

늪에 매어둔 빈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부들부들 떠는 부들과 갈 데까지 간 갈대가 몸서리를 친다

연신 꾸루룩거리며 늪은 뭔가를 소화하고 있다

거대한 잎을 가진 메기와 가물치는 이곳 특산물이다

마을흔 조금씩 침강하고 늪은 사람들 이마까지 융기한다

늪의 경작지는 구들장에까지 이르며

늪의 영지를 방문하기 위해선

종일 엎드려 일하는 그의 소작농들처럼 경의를 표해야 한다

도시에서 십년 만에 낙향하는 당신

매연과 콜타르와 석유 냄새가 몸에 밴 당신

환영한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늪으로 당신은 돌아온 것이다

 

 

 

* 황금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