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날아갈 때
최 금 진
하늘을 떠가는 비행기는 심해의 상어 같다
거기엔 사나운 사람들이 창문에 하나씩 달려
땅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질할 것이다
소라껍데기 같은 건 집이고, 소라게 같은 건 사람이다
나도 꼭 한번 밤에 비행기를 탔을 때
도시는 교회 십자가가 잔뜩 세워진 묘지 같았다
어둠은 날개를 접고 앉아
무심히 도시를 쪼아먹고 있었다
봐라, 저건 공장에서 막 귀가하는 사람들이고
저것들은 단수가 아닌 복수로만 쓰인다,
항공사의 젊은 스튜어디스는 떠난 애인을 생각하며
난기류에 덜컹이는
자신의 바닥에 대해 침묵했을 것이다
동해와 서해를 잠시 접어두었다가 펼쳐보면
어김없이 커다란 해가 지고 있다
그 틈에 꽉 끼어 비행기가 몸을 갈며 날아간다
그리고 현기증,
발밑에서 뭔가가 사람들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공장 하수구에서 깨어난 유령처럼
얼굴에 눈구멍만 뻥 뚫린 사람들이 취한 채 걸어가고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은 착착 땅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봐라, 저건 달이고, 비슷하게 보이지만
저건 사람이고, 저건 사람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안다
사람들은 똑같이 검은색이고
비행기가 막 이륙하는 순간이 가장 어지럽고 황홀하다
* 황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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