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우리 집 선풍기는 고집이 세다 [이재무]

초록여신 2011. 7. 18. 09:43

 

 

 

 

 

 

 

 

 

 

그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게 신혼 초니까

벌써 이십 년, 결코 작은 세월이 아니다

물건의 입장에서 보면 이제 노년에 든 셈이다

처음 청년의 몸으로 들어올 때는

구릿빛 근육이 참으로 탐스러웠다

그러나 누구든 세월의 횡포를 이길 순 없다

그의 몸도 이제 여기저기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요사이는 부쩍 관절염과 신경통이 심해졌는지

앓는 소리가 잦고 요란하다

그러면서 성정도 예전과 달리 강팔라졌다

그렇게 순하게만 굴던 그에게

전에 없는 치매성 고집이 생긴 것이다

그래도 달래면 곧잘 듣더니 근자에 들어서는

달랠수록 더 심통 부리며 엇나가기만 한다

저라고 왜 인욕의 시간이 없었겠는가

 

 

 

* 경쾌한 유랑

 

'詩다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렬종대 [이재무]  (0) 2011.07.21
연못 위에 아기를, [유홍준]  (0) 2011.07.18
물의 기억 [이재무]  (0) 2011.07.15
자두를 만나다 [유홍준]  (0) 2011.07.15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0) 2011.07.14